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고 온 기분이다. 단순히 밴드의 모습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 이상이었다. 무대 공간 전체를 활용한 시각적 영상과 사운드, 그리고 연주하는 본인들 스스로 훌륭한 작품이 되어 전시된 모습...
*개인적인 공연 관람 후기입니다. 비약이 있을 수도 있어요.
공연 이름은 <EXHIBITION>이고 포스터는 지금껏 낸 앨범들의 자켓이다. 공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모든 아트워크와 미공개 작품들로 그 여정을 다시 그립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소리, 이미지, 감각의 파편들과 함께 EVENIF의 여정을 가까이서 느껴보세요.
어떤 공연이든 최우선 목표는 자신들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데, 이 밴드는 자신들이 겪은 음악인으로서 인생을 말하는 듯했다. 그것도 시각적 영상과 함께.
처음에는 로딩 과정처럼 보이는 영상과 전주곡으로 도입부를 그린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 이제부터 잘 보라는 식. 로딩이 끝나면 Ocean이 조용하게 나온다. 그다음으로는 The night, Circle around you.
여기에서 잠깐 evenif의 앨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자면, 1집과 2집에서 말하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고 느꼈다. 진짜로 연인에 대한 사랑과 아픔을 말하는 건 왜인지 3집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각각의 곡은 1집과 2집에 있는 곡으로, 음악이라는 바닷속에 푹 빠져 몽환적으로 몸을 뉘이고, 또 신나게 음악을 즐기는 초창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Ocean은 특히 꿈꾸는 것같은 뭉실뭉실한 영상으로 본격적인 공연에 진입하는 다리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렇게 나오는 The night과 Circle around you는... 정말 미칠 뻔했다. 어떻게 하면 멋있을 수 있는지 고민의 고민을 다 했을 듯. 내가 이 밴드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적나라하게 다시 느꼈다.
이후 Nostalgia가 나오며 분위기가 바뀐다. Sometimes와 더불어 갑작스레 변한 분위기는 마치 '음악에 대한 애증'같다. 음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든 과정일 텐데, 심지어 아직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으니(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더욱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동시에 하고 싶은 음악이 뭔지 정체성과 방향성을 끊임없이 찾아 헤맬 수밖에. 더 나아가 밴드라는 팀 안에서 겪는 충돌과 갈등이 더해지며, 좋아하면서도 싫증난 음악이란 대상에 대해 가진 감정을 보여내는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물 속에 잠기듯 편안해하고, 순수하게 음악을 즐거워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Nostalgia), 음악을 하며 겪은 상처와 실패가 파고들며 겪은 아픔(Sometimes). 그럼에도 영상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며 음악이라는 늪을 헤쳐나간다.
City light는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실제로 토크 시간 때 힘들지만 도시의 빛을 보며 위로를 받으며 쓴 곡이라 말했다(내가 이해한 선으로는). 이때 나는 <인섬니악 시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하철을 향해 걸으면서 하늘을 보니 거대한 흰색 구름 기둥이 시야에 들어왔다. 달빛에 역광을 받은 환한 밤 구름은 언제 보아도 황홀하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광경이 나를 아무 도시가 아닌 어떤 행성의 일부, 한 우주의 일부로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러고는 내가 가끔씩 혼란스러울 때나 내 인생에서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되짚어봐야 할 때 하는 행동을 했다. 쓰레기를 갖다 치우듯 빠른 속도로 일종의 형이상학적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여기는 하나의 행성이라는 의식”, 이라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하늘과 구름에 대한 의식도.”
“구름을 사랑했으며 일 년 전 내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의식.”
“내가 여기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의식.”
“여기에는 내 발로 왔다는 의식.”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는 의식.”
<인섬니악 시티> - 빌 헤이스
내가 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순간에 맞닥뜨리는 초월적인 감정. 지리멸렬한 현실 속에서 막막함에 한숨을 연거푸 쉬면서도, 다시금 우리의 삶을 사랑하도록 용기를 건네주는 형용할 수 없는 순간. 보잘것없는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나 자신이 다시금 멍청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미약한 존재로서, 보다 큰 무언가를 느끼고 연결되며 나 혼자 덩그러니 놓인 게 아님을 형이상학적으로 알게 되는 이상한 순간. 이를 공연에서 느끼는 순간 나는 진심으로 벅차올랐다.
이어서 Dopamin이 나오며 무의미 속 권태에서 벗어나 다시금 새롭게 시작한다. 그렇게 So you are bad (Understand?)는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가슴 절절한 가사임에도 오히려 새롭고 신나는 사운드로 탈바꿈하여 음악 그 자체로 즐긴다. 파괴적인 편곡은 이전에 나온 Dopamine 덕에 정당화된다. 그리고서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interlude를 주며 잠시 숨을 돌린다.
마지막으로는 줄다리기와 The lovers. '과거의 이야기는 이렇구요, 지금은 음악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며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할 거란 모습을 보이며 끝이 난다.
어쩌면 과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나는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사운드적으로 듣기 좋은 순서를 배치한 게 아닌, 진심으로 본인들이 겪은 여정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유기적인 연결만 중요시한 게 아니라 음악 자체로도 너무 좋았다. 모든 음악이 정말 최고였지만, 나는 Circle around you에서 보여준 음악과 화면이 내겐 최고였다. 미니멀하면서도 그 안에서 모든 걸 보여주는 듯한 모습... 그리고 City light와 The night도! 사실 evenif 음악은 low hanging fruit 음악을 들으며 자동재생으로 알게 됐는데, 확실히 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좋아하는 듯. 이런 사운드에 영상까지도 화려하게 보여주니 미칠 뻔했다.
이후에 토크 시간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정말 좋았다. 인기가 없는 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지만, 또 이렇게 직접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이 밴드가 나와 같은 평범한 관객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어려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도 예술을 하는 밴드라면, 언젠가 나타날 눈앞의 운만 거머쥐면 충분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기도 하고. 별 일이 없다면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밴드의 공연을 보고 싶다. 다음번에는 대체 어떤 공연을 보여줄까 기대 중.
예술을 하는 밴드답게 거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도 예술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놀랐던 건 아트워크들이 베이스 민지선 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더불어서 유리 공예 작품도 협업해서 내고...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여준 것도 이해가 간다. 왜냐면 이들은 정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
특히 아트워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더더욱 작품 하나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3집 자켓 그림을 하나 구매. 우리 학교의 미대 졸업 전시에 가면 자신의 가치를 확고히 쌓지 않은 채 탄탄하지 못한 작품을 마주할 때가 있다(물론 현대 미술을 책 몇 권으로만 이해한 어중이떠중이 식견이지만). 애초에 진짜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공연장에서 본 작품들은 정말 좋았다. 밴드의 이야기가 담긴, 이렇게 멋있는 회화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맘 같아서는 다 사고 싶었는데 지금은 하찮은 원룸살이 대학생이라 고민 끝에 하나만 골랐다.
오둥이랑 같이 있는 그림... 얼른 꼭꼬핀같은 걸 사서 벽에 걸어놓을 생각이다. 정말 너무 예뻐! 특히 Invitation을 우리 집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더 좋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우리 집은 나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자아라 생각하기에 완전 안성맞춤. 살면서 처음으로 산 회화가 이렇게 예쁘고 의미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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