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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끼기/공연, 전시

공연 : 밴드 고고학 (합정, 2024.03.23.)

by 고라닭 2024. 3. 25.

 
 밴드 고고학의 공연을 봤다. 
 

출처: https://www.instagram.com/p/C3y3uvgJs4e/

 
 공연은 3월 23일 합정의 고슴도치 티라미수에서 열렸다.
 
 입장 전 고고학 로고컵에 내추럴 와인 한 잔이 제공된다. 평소에는 취기가 썩 좋지 않은 예민함을 불러와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연 보기 전 한 잔은 흔쾌히. 맛은 톡톡 튀는 산미와 소비뇽 블랑에서 느낀 레몬 그라스처럼 그린한 느낌이 함께 있었다. 주스처럼 쉽게 넘어가는 와인.
 
 고고학 밴드를 안 건 속초 여행에서 만난 우연. 카카오맵 평점이 좋은 와인바 사장님이 음악 전공자였고, 마침 밴드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흥미가 크지는 않았는데 숙소에 들어와 노래를 들어보니 깜짝 놀랐다. 너무 내 취향이라 노래에 푹 빠졌고 근 한 달 간 일상에서 듣는 노래가 되었다.
 
 음악이 어떻고 저렇고 하는 의견들은 전부 알못이 쓴 주관적 의견이다. 양해를 미리 구하며...
 

고고학 컵

 
 MZ 답게 광각으로 찍어봤는데 나쁘지 않은 듯. 사진에서 은은히 즐거운 취기가 보이는 듯하다.
 
 우선 라이브가 장난 아니었다. 공연을 위해 제대로 갈고 닦은 사운드들. 첫 곡부터 참 좋다고 느꼈는데, 곡이 쌓여갈 수록 더 좋아졌다. '이번 곡 마음에 드는데?' 싶을 때 그 다음 곡을 들으면 또 다시 '와 이번 곡 죽이는데?' 하기를 반복했다. 곡들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후반부로 가니 네 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뻔뻔해지며 자연스러워지는 소리들. 에너지가 내게도 전해졌고 나도 모르게 꿈틀꿈틀,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키보드는 특히 갈수록 엄청 뻔뻔해지던데 그게 너무 좋았다.
 
 생각치도 못한 건 조명. 소규모 밴드 공연이라 함은 대충 조명 몇 개 켜두고 하는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였다. 노래 타이밍에 맞춰 인 아웃 하는 게 공연에 잘 어우러졌고 감각적으로도 또랑또랑했다. 고고학이라는 밴드가 공간 전체를 컨트롤한다는 게 느껴질 만큼 모든 요소가 확실했다.
 

보컬 하범석

 
 모든 세션이 참 좋았다. 내게 깊이 다가왔던 건 드럼. 강약 조절이나 박자감이나 정말 프로였다. 바로 어제 학과 밴드 공연을 보고 나서 그런지... 드럼이라는 악기의 깊이가 차원이 달랐다.
 
 청각적으로는 기타 연주도 너무 현란했고, 키보드도 로파이하고 흐물흐물한 사운드들이 기가 막혔다. 키보드 사운드는 다 같이 만드는 건가? 곡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끌고나가는 요상하고 변태같은 사운드가 공연장을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연주자의 뻔뻔함으로 그 효과는 곱절.
 

드럼 강전호

 
 사실 베이스도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밴드 속에 옹골차게 들어있는 베이스를 콕 집어서 캐치할 만한 청취 실력은 아닌 듯. 공연을 보고 참 매력적인 베이시스트다, 혹은 유니크한 사운드다 하며 평가하던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원희 말로는 곡 자체가 베이스를 돋보이게 하는 건 없었다고 하던데 나는 알못이라...
 
 아쉬운 점을 써보자면 중간중간 중저음 부분의 음질이 깨졌다는 점. 특히 베이스 솔로 구간에서 이상하게 공명하는 소리의 깨짐이 너무 아쉬웠다. 더 멋있을 수 있었을 텐데. 음향은 잘 모르지만 뭔가 기타와 키보드가 내는 사운드에 집중하다보니 그런 걸까?
 

키보드 LAKOV

 
 공연 중 미공개 곡이 꽤 많았다. 기억에 남는 건 두 곡이다. 사실 곡 제목이 잘 기억이 안 남. 들으면서 감상 기록도 좀 써놓을 걸. 환청이랑 '오에오' 하는 곡이었는데 사실 '오에오'가 환청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원희한테 두 곡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글을 쓰려니 잘 모르겠다. 둘 다 미공개 곡이라 음원을 들어볼 수도 없는 노릇.
 
 내가 좋다고 한 두 곡 모두 가사로 전달하는 느낌은 비슷했다. 내면에서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도저히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는 기분.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흔히 응어리지는 사념들. 그게 악기의 소리로 너무 멋드러지게 잘 표현됐다. 그러한 감정이 무엇인지도 내게 잘 느껴지기도 했고. '질투'처럼 애절하고 찌질한 사랑의 이야기도 좋지만, 나조차도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내게는 참 감동적이다. '그래, 살아간다는 건 이런 거야' 싶은 느낌.
 

베이스 유병현

 
 앞으로 '밴드 공연'을 떠올리면 이 날의 공간이 떠오를 것 같다. 네 명이 함께 리듬을 타고 나도 편승해 함께 즐기는 기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런 공연을 본 게 처음이라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두말할 것 없이 아주 긍정적이고 다음에 기회가 된 다면 또 보고 싶다. 고고학 밴드는 물론이고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준 고고학 밴드에게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