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겨울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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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의식의 흐름
백목련의 겨울눈 위로 눈 알갱이들이 내려앉았다. 언제 이렇게 보송보송해진 걸까. 늘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겨울 냄새를 맡고 난 뒤에야 소복이 눈이 쌓이곤 했는데. 올해 겨울 향이 굼뜬 걸까, 아니면 먼저께 왔음에도 알아챌 경황이 없었던 걸까. 조금은 늦게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앙상해진 가지를 볼 때면 느끼는 무상함은 지겨울 법한데도 매번 참 낯설다. 사계절 속 생명의 흐름을 또렷이 인식한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내 몸도 앙상해져야 친근해지려나. 자연스레 세월을 한 겹씩 모으다 보면 무상함도 미련 없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꽤 슬플 것 같다. 지금의 두려움과 초조함 모두 먼 훗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란 말이 내게는... 내게는 너무 서..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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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의식의 흐름
언젠가부터 몸을 괴롭히지 않으면 정신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시계에 밥을 주듯, 몸에 달린 태엽에 정기적으로 밥을 주어야 한다. 달리고, 수영하고, 등반하고... 무엇도 더 할 여력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저 러닝화를 신고 나갈 뿐이다.  달리기 그 자체를 인식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스스로 달린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타인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에게 자랑하고 대단해 보이려는 욕심으로 달리고 있었다. 운 좋게 빠른 성장을 거머쥔 점도 한 몫했다. 마른 체형, 준수한 지구력. 제대로 된 훈련 없이 선망하는 기록을 향한 꿈과 열정만을 도둑질했다. 내게는 달린다는 행위가 삶과 호흡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하나의 증명 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이렇..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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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의식의 흐름
우리말에서 어떤 것의 절반을 이야기할 때, 접두사에 반을 붙이는 관습이 있습니다. 일 년의 절반은 반년인 것처럼요. 낮의 절반이라는 뜻으로 반나절이란 말을 쓰곤 하지만, 실은 이건 잘못된 쓰임입니다.  나절은 '낮'과 절단할 '절'이 합쳐진 단어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낮을 반으로 나눈 시간인 셈입니다. 낮의 길이를 12시간이라 하면 나절은 6시간이 되겠죠. 거기에 반을 붙인 '반나절'은 고작 3시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생각하느라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는 일은 제법 있을 만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한나절은 되었다고 말해야 막연한 사랑고백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요. 나의 하루 중 반나절 정도는 제법 그럴듯한 일에 쓰이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새를 마주하거나, 혹은 막연한 풍경 ..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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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의식의 흐름
우리는 온전한 존재이기 위해 불완전한 기억을 지녔다. 뇌과학 수업과 여러 서적을 통해, 기억은 '있었던 장면을 그대로 포착'하는 게 아닌, '자신의 상상력을 빌려 재구성'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더 나아가 기억의 디테일들이 망각의 과녁이 되고 나면 완전히 다른 사실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알고 나면 뇌의 착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이성적 사고와 관계없이 '지각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록은 탄생했을 것이다.  단순히 상황을 열거하는 기록에서 더 나아가면 '대상'이 존재한다. 어떠한 목적을 가진 채 '나의 지각'이 기록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물론 지각이 온전히 배제된 기록은 없지만, 상황의 열거를 벗어나는 순간은 분명 존재..
고라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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