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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끼기/책

시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by 고라닭 2023. 3. 27.

 

낯선 단어의 나열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눈으로 흘겨본 뒤 소리내어 읽고, 다시 한 획씩 음미하며 종이에 써내려간다. 내가 시를 읽는 방식이다. 말하기에도, 만져보기에도 흠이 없다.

 

한강의 단어는 무겁기도, 꽤 낯선 단어의 나열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눈으로 흘겨본 뒤 소리내어 읽고, 다시 한 획씩 음미하며 종이에 써내려간다. 내가 시를 읽는 방식이다. 말하기에도, 만져보기에도 흠이 없다.

한강의 단어는 무겁기도, 꽤 가볍기도 하다. 고뇌로 고통받는 삶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살아가기를 포기한 이는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 것인가, 혹은 가벼움을 참지 못한 것인가. 물리적으로 명료한 중력의 문제는 문학에서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된다.

슬픔과 비애가 숨을 옥죄어온다. 무거운 눈물은 그녀를 적시며 흉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흠뻑 젖어 가벼워진 몸으로 위태로웠던 과거를 토해낸다. 당신을 넝마로 만든 흠집을 응시하며, 나는 이 모든 행위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뇌이던 지난 날의 울음이 당신의 목구멍까지 메우지는 못했으므로. 그녀의 처절한 숨 안에 가득한 사랑을 본다.

2023.02.22.